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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실패담: 되려 더 불안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미니멀리즘은 해방일 줄 알았다, 처음엔

처음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저는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물건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고, 일상에 치이고 지친 상태에서 ‘버리는 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리정돈이 곧 자기돌봄이고, 비움은 곧 나를 찾는 길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은 저에게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복잡한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 그게 미니멀리즘이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그때 미니멀리즘이 해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믿음이 너무 순진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던 날, 거실 한복판엔 쓰레기봉투가 10개가 넘게 쌓여 있었습니다. 옷장, 책장, 부엌 수납장까지 샅샅이 뒤졌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거침없이 버려냈습니다. 그 과정을 마친 후, 저는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말 그대로 공간이 넓어졌고, 머릿속도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급격히 불안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놓쳐버린 느낌,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공포가 제 마음속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버린 물건들이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제 감정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의 일부였다는 사실을요. '나는 과거를 정리하는 중이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사실 저는 ‘비워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었던 겁니다. 인터넷에서 본 다른 사람들의 미니멀한 집과 삶이 부럽게 느껴졌고, 저는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무언가를 버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 물건들을 왜 버리는지, 진짜로 원해서 버리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감정의 붕괴였습니다. 방은 깨끗해졌지만,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물건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여백이 아니라 공허함이었고, 저는 점점 불안정해졌습니다. 미니멀리즘이 정답이라고 믿고 달려왔는데, 정작 제 감정은 이해받지 못한 채 방치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더 단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몰아세운 셈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가 미니멀리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적게 가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요.

 

줄이는 것에 집착하면서 오히려 더 무너졌다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은 나름의 규칙과 기준을 세워 실천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정리하기, 한 번 입지 않은 옷은 버리기, 책은 다 읽은 것만 남기기 등등. 이 과정은 처음엔 저에게 질서를 주었습니다. 무언가를 ‘비우고 있다’는 느낌은 정리되지 않은 마음에 위안을 주었고, 그렇게 저는 조금씩 변화를 체감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통제 강박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삶을 가볍게 만들기 위한 실천이었는데, 어느새 저는 ‘비우는 행위’ 자체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보면 불안했고, 누군가 제 방에 무언가를 놓고 가기라도 하면 거부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데도 지나치게 민감해졌고, 심지어는 선물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저건 내가 고른 게 아니니까 내 삶에 불필요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제 안에서는 분명한 선이 그어졌습니다. 그 선을 넘는 것은 불편했고,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마저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물건을 덜어내며 사람까지 밀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가족이 작은 장식품 하나를 제 책상에 놓아주었습니다. 그건 그들이 여행을 다녀오며 고른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보고 '왜 내 공간에 이런 걸 두지?'라는 반응부터 했습니다. 감정을 전하려던 소중한 마음을 저는 ‘미니멀함의 규칙’이라는 틀로 밀어냈던 것입니다. 이때 느낀 죄책감은 꽤 오래 갔습니다. 미니멀리즘은 저에게 자유를 줄 거라 믿었지만, 현실의 저는 더욱더 좁은 감정의 틀 속에 갇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자, 삶은 점점 단조로워졌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선택 그 자체를 회피하는 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불필요한 걸 줄이자’는 원칙이 ‘아무것도 들이지 말자’로 바뀌었고, 결국 저는 다양한 가능성도 함께 닫아버렸습니다. 옷은 같은 스타일만 입게 되고, 식사도 늘 똑같은 구성으로 이어졌으며, 만나는 사람도 점점 줄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군더더기 없는 삶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면에서는 확실한 고립감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감정의 밀도는 낮아졌고, 하루하루가 건조하게 흘러갔습니다. 비워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저는 점점 자유가 아닌 결핍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원했던 건 단순함이 아니라, 마음의 안전지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껴졌습니다. 제가 그렇게 열심히 비우고 줄이려 했던 건, 사실 물건이 아니라 감정이었다는 걸요. 표면적으로는 깔끔한 공간, 간결한 일상, 정돈된 루틴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불안했고, 어떤 날은 조용한 방 안에서도 마음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들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서 저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안전한 틀 안으로 도피하고 있었던 겁니다.

단순함은 보기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절제가 따라붙습니다. 그 절제가 스스로의 선택이라면 단단한 자기 관리일 수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감정을 외면한 채 실천만 앞세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안의 진짜 욕구를 잊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 나를 위로해주는 요소들마저 모두 ‘불필요한 것’이라 규정해버렸고, 결국 저는 저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함의 외피 안에 감정의 불균형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은 퇴근 후 따뜻한 조명이 켜진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과 차 한 잔으로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명은 불필요한 소비’, ‘차는 단순한 생수로도 충분’이라는 자기검열이 앞섰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위로 방식을 제약하다 보니, 감정은 점점 무뎌지고 무력해졌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감정을 돌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감정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왜곡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순은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에서 더 크게 드러났습니다. 음악을 틀지 않는 이유, 향초를 사지 않는 이유, 기념일조차 ‘이벤트는 과잉’이라 넘기게 된 이유들. 모두 단순하고 효율적인 삶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감정의 기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뭔가를 기념하고, 기뻐하고, 때론 울고 싶은 마음조차 정리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원했던 건 결코 물건이 없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안전하게 놓일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아무리 물건을 비워도, 스스로를 마주하지 않는 한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미니멀리즘 실패담: 되려 더 불안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나에게 맞는 미니멀리즘을 다시 정의하다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시작한 뒤로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만큼, 그 안에서 불안과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은 쉽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더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깔끔한 집에 앉아 있는데도 편하지 않았고, 정리된 일정표를 들여다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지쳐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이 방식이 정말 나에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금 ‘진짜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미니멀리즘이 무조건적인 ‘비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실천하는 방식 그대로 따르다 보면, 나에게 필요한 것마저 놓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빈 책상과 모노톤의 공간이 최고의 집중을 만들어내는 요소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감정을 쉬게 해주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조용한 음악, 나만의 책상 위 풍경, 마음이 놓이는 물건 몇 가지가 놓여 있는 삶. 그것이 오히려 저를 더 안정시키고, 제 감정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단순함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조금씩 체득해 나갔습니다.

이후부터 저는 미니멀리즘을 ‘무조건 덜어내기’가 아닌, ‘필요한 것을 선명하게 남기는 방식’으로 바꾸어 실천하고 있습니다. 버릴 것만 찾던 습관을 고치고, 오히려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니까 남긴다’는 태도를 가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남은 것들은 제 삶을 구성하는 진짜 요소가 되었고, 그것들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제 정체성과 감정을 지지해주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비워야만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것들을 중심에 두는 것이 진짜 미니멀리즘일 수 있다는 깨달음. 그건 제가 직접 실패해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진리였습니다.

지금 저는 더 이상 미니멀리즘을 ‘누군가처럼 보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영상이나 블로그에 나오는 삶을 따라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추구하는 삶의 형태는 조금 어수선할 수도 있고, 남들 눈에는 ‘미니멀하지 않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지금 이 삶이 제 감정이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고 있고, 제가 선택한 것들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요. 그것이야말로 실패에서 건져 올린 가장 값진 교훈이자, 저만의 방식으로 다시 정의한 미니멀리즘입니다. 더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이 공간, 이 방식, 이 감정들이 바로 제가 지켜야 할 진짜 가치이니까요.